은퇴한 학자인 노부인 베티는 남편과 사별하고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로이를 만난다. 로이와 베티는 의기투합해서 동거를 시작하지만 어딘가 로이의 뒷배경이 이상하다. 그는 사기꾼이었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베티에게 접근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의 결론은 권선징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또 제목에는 숨겨진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덕분에 이 이야기는 뻔한 반전 스릴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작가인 니콜라스 설은 25년 동안 영국 정보부에서 일한 이색적인 이력을 갖고 있다. 장편소설 굿 라이어는 그의 처녀작으로 글쓰기 강좌에서 쓴 소설을 발전시킨 것이다. 첫번째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문장과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유명 배우 이안 맥컬런을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대개 반전이 있다는 얘기는 그것 자체로도 반전을 죽이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어떤 영화나 소설에 반전이 있다면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이 소설은 책표지 뒷면에 크게 반전이 있다고 써 놓았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에는 무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굿 라이어가 선보이는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로이는 철저한 악인으로 어렸을 때부터 악의 싹을 보였던 인물이다. 다른 사람을 짓밟고 밀고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또 자신의 신분을 여러번 바꿔가며 타인의 죽음을 이용했다. 이런 인물에게 편안한 죽음이란 그의 죄에 걸맞지 않는다. 아주 고통스러운 죽음만이 그에게 내려지기에 합당한 형벌이다. 소설은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마침내 끝에 도달해서는 아무런 용서도 받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외로운 죽음에서 발버둥치는 것이다. 굿 라이어는 품위있게 이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유장한 흐름으로 보여주고 있다. 글의 분량이 많기 때문에 중간 부분에서는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후반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용서받을 수 있다.
로이의 시점에서 대부분 이뤄지는 이 이야기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떠올리게도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인 연쇄살인범은 치매에 걸려 조금씩 기억을 잃어버린다. 로이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죽은 인물만 한무더기다. 그래도 로이에게 연민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자기 변명을 잊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인물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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