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의 판타지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김훈이 처음으로 시도한 판타지 소설이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북으로 출간되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전체 이야기는 초와 단이라는 중국의 고대 국가를 연상시키는 두 나라 간의 전쟁과 신월마의 혈통을 이은 말 토하와 비혈마의 혈통을 이은 말 야백의 삶과 전쟁을 다루고 있다. 혹자는 이 소설을 말이 주인공인 판타지 소설이라고 칭하는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김훈은 그동안 역사소설에만 치중해왔던 작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판타지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책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 편린을 찾을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작가는 창문 밖으로 나타나는 풍경에 놀라 이 소설을 창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놀라게 된 이유나 무엇을 보고 특히 감흥을 일으키게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말을 아낀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김훈이란 작가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서 이 소설이 완성되는 과정이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김훈이 다른 동물이 아닌 말을 이 소설의 주인공을 삼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는 "성품이 강인하며 아름답다"며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고 적혀 있다. 말을 타게 되면서부터 인간이 벌이는 전쟁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때문에 말은 농사일이나 성벽을 축조하는 일에도 쓰였지만 주로 다른 사람이나 말을 죽이는 일에 요긴하게 쓰였다. 그동안 소설에서 전쟁을 꾸준하게 다루어왔던 작가인 만큼 말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의 전쟁은 다른 소설에서 다루었던 만큼 잔인하고 무정하다. 사람들은 풀이 베어 넘어가듯이 죽어나가고 전장에서 패배한 장수는 옷을 벗고 자신을 투석기에 실어 적진으로 날려보낸다. 자신을 타던 장수가 죽자 야백은 고삐를 빼내기 위해 돌에 이빨을 부딪혀 이빨을 뽑아버린다. 야백은 적국의 왕이 타던 토하를 만나 교접을 하지만 토하를 돌보던 관리들에 의해 그 유생은 낙태된다.




​야백과 토하, 두마리의 말은 상등급의 명마로 인정을 받았으나 전쟁통에 점점 지위가 내려와 폐등급의 말 취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두 말은 그런 지위의 격하로 인해 오히려 버려짐으로써 인간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말이 표현하는 자유는 전쟁에 시달리고 동원되어온 단과 초의 백성들에 비하면 더없이 유쾌한 상태다. 김훈은 승과 패를 거듭하는 초나라와 단나라 외에도 부족 국가의 연맹 형태로 존재하는 월나라를 등장시켜 이러한 대비를 심화시킨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왕자로 태어나서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무당과 교접하며 세상을 떠도는 '연'은 인간의 언어를 버리고 짐승처럼 살아간다. 김훈에게 문명은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다. 그에 비해 야만은 인간의 목숨을 영위하는 꿈의 경지다. 본래 야만으로 태어났으나 문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던 말이 마침내 다시 야만으로 돌아갔을 때 존재로서의 자유는 성립하게 된다.




​김훈은 이 소설을 통해서 문명과 야만의 대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자를 천시하며 입말로만 이야기를 전하는 나라 '단'을 문자를 중시하는 나라 '초'가 정벌했다가 다시 화공으로 인해 공멸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이 이러한 대비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부족들의 느슨한 연합체인 '월'의 주민들은 자연이 내주는 선물을 그대로 이어 받아 살아가고 이러한 형태로서만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자연'으로 성립하게 된다.




김훈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통해 그동안 써온 역사소설에서의 전쟁, 문명, 야만이라는 키워드를 말과 두 나라의 다툼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때문에 판타지 소설이라는 외형을 갖추었으나 실은 중국에서 반복되었던, 또한 우리 한반도에서 계속되었던 전쟁과 외침의 역사를 동어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김훈은 역사라는 틀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얻게 된 것은 말이 의미하는 무한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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