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던 책이다. 작년에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동시에 수상한 화제작이라고 해서다. 하지만 읽고 나서는 실망이 더 컸다. 먼저 문장이 지나치게 꼬여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문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복잡한 문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이상한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원작의 문장이 이상해서라는 쪽이 표를 던지고 싶다. 내용 이해가 어려울 정도로 중구난방인 문장이었다.
이상한 문장을 넘으면 주인공간의 동성애 - 시간을 둘러 싸고 싸우는 양 기관인 에이전시와 가든의 요원들간의 사랑 이야기란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한다. 둘 다 여자 캐릭터인데 어떻게 해서 사랑에 빠지는지에 대해 공감이 가지 않았다. 최근의 서구 SF 경향이 국내 독자들의 취향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레즈비언끼리의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도대체 왜 사랑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두 캐릭터는 서로에게 갖가지 기묘한 방법으로 편지를 보낸다.
서간문에 일반적인 소설 서술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레드와 블루라는 가명을 쓰는 두 캐릭터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다. 따로 줄거리라고 지칭할만한 것이 존재하질 않는다. 어째서 SF 상을 받았는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이 작품은 계속해서 뭔가 SF적인 요소들을 묘사할 뿐이다. 시대를 가로질러 벌어지는 이 요원들의 다툼은 하나의 생을 견뎌낸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 묘사가 피상적이어서 SF에 익숙한 독자라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일 것이다.
물론 내가 서구 SF 독자라면 다른 평을 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은 번역본 뿐이다. 이 작품은 번역본으로서는 실패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뭔가를 느낀 독자가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할 정도니까 말이다. 난해한 문장으로 유명한 러브크래프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색창연한 그의 문장은 번역을 거치고 나서도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작품의 본질적인 한계는 두 작가가 서로 주고 받으며 소설을 썼다는 점에 있다. 통일된 분위기를 자아내기가 힘들고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도 짜임새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기가 애초에 불가능했다. 열정과 냉정사이 같은 일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영리한 소설적 기교는 이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다. 독자는 어지러운 문장 속에서 헤맬 뿐이고 그나마 이 작품이 경장편에 속하는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 된다.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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