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네이버 책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단편집 오블리비언은 끝을 알 수 없는 장광설과 사건 진행을 지연시키는 기나긴 묘사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에세이를 통해서 월리스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각종 주석과 곁가지 이야기를 풍성하게 늘어놓는 것이 특징이다. 번역에만 2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난해하고 만연체가 과할 정도로 사용된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집에는 총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첫번째 작품 '미스터 스퀴시'는 마케팅 회사의 이면을 파헤친 소설이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건물의 외벽을 올라가는 형체가 등장하는 장면이 이색적이다. '영혼은 대장간이 아니다'는 초등학교 시민윤리 시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학생은 창문을 통해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수업 중에 갑자기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다가 그들을 죽이라는 내용을 쓰기 시작하면서 교실이 패닉에 빠지게 된다.
'화상 입은 아이들의 현현'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울부짖는 아이 앞에서 이를 수습하려는 부모의 모습을 그린 엽편이다. '또 하나의 선구자'는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 부족 사회에서 마치 인공지능 컴퓨터처럼 어떤 질문에든 적절한 답변을 내놓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굿 올드 네온'은 평생을 기만적인 인간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주인공이 자살한 이후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묘사하는 내용이다. 저자와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실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이력을 감안했을 때 다소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남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런 자신을 꾸며내는 일에 진력했던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철학과 자연의 거울'은 성형수술을 받다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굳어져버린 어머니를 모시고 변호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표정에 버스 승객들은 깜짝 놀란다. 표제작이자 일곱번째 소설인 '오블리비언'은 주인공의 코골이를 비난하는 아내와 그런 아내에게 대항하기 위해 수면 클리닉을 방문하자고 제안한 후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혼란 속에서 꿈 속이야기로 종료된다.
'더 서퍼링 채널'은 똥을 이용하여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를 취재하려는 잡지 기자의 이야기다. 잡지사 내부의 알력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이런 사소하면서도 인간적인 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자 입장에서 종횡무진 펼쳐진다.
월리스의 소설은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체험을 해봐야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 속에서 수많은 진실이 허구와 뒤섞인다. 월리스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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