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의 SF 소설 '청혼'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실 내용은 우주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예언서에 그려진대로 등장한 외계인 함대와 장거리 사격을 통해 전투를 벌이는 지구군은 상대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주인공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을 짜는 한편 지구에 두고 온 약혼자에 대한 사랑을 표시한다.
배명훈은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대학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단편 '스마트 D'로 SF 공모전에 입상한다. 201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SF 만이 아니라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 답게 '청혼'은 우주 전쟁의 세부에 집중하면서도 전략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루시퍼 입자라는 광선 무기로 장거리 포격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주 전투는 독자로 하여금 SF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도 자신의 약혼자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작품의 서정성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본령이 되는 우주 전쟁과 갑작스럽게 약혼자를 찾아오는 여자를 무정하게 보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냉정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약혼자를 영원히 떠날지도 모르는 모험을 감행하는 결말에 이르러서는 어째서 이 소설이 '청혼'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배명훈 작가는 다작을 하는 작가다. 때문에 이 작품은 그의 수많은 작품군 속에서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소품을 읽는 기분으로 독서에 나서야만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실제 작품의 분량은 장편이 아니라 중편 정도로 한 페이지에 행을 적게 넣는 방식으로 편집을 해서 분량을 많게 보이게 했다. 이 방법은 가독성은 높이지만 다 읽고 나서 허무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는 편집 방식이다.
이 소설에서 독자가 느낄 수 있는 백미는 광활한 우주에 대한 묘사다. 우주 태생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지구에 가면 근육이 약해져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반면에 지구 사람들은 우주에 나오면 피가 몰려 얼굴이 커진다. 때문에 미인도 못생기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인공은 말하고 있다. 이런 우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에게 우주란 위도 아래도 없는 끝도 없이 적막한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포격을 한 후 또 어딘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적의 함대는 이 우주의 고독을 공포에 가깝도록 만든다. 우주에서의 전투는 고독한 일이다. 저 멀리 있는 적 함대는 센서에만 잡히는 하나의 별이나 마찬가지다. 그 별을 향해서 입자포를 발사하는 행위 역시 마치 하늘에 총을 발사하는 것처럼 정처없는 일이다. 이 우주에서 또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해서 주인공은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그는 우주에서 태어나 결국 우주에서 죽을 운명인 것이다.
천체물리학, 군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박식한 작가의 실력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저자가 상세하게 묘사하는 함대의 세부 사항이라든가 우주전의 묘사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또 반란군이라는 동호회에 가입되어 있는 주인공이 결국 실제로 반란군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설정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 소설을 전쟁 이야기로 읽는다면 작가의 치밀한 전투 묘사에서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혼'에 걸맞는 서정성을 기대한다면 일부 실망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작품의 대부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 함대와의 포격전 묘사이다. 작품의 전체 틀이 약혼자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이라고는 하나 결국 그뿐이다. 제목과 내용의 어울리지 않는 불일치를 참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책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안에 내용와 어울리는 삽화가 있는 점이 특이하다. 소설에 그림을 넣는 것은 라이트 노벨의 특기다. SF 중에서도 가벼운 쪽에 속하는 전쟁 소설이기에 삽화를 통해 작품의 고독한 분위기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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