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조애나 러스의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는 SF 평론가이자 작가인 저자의 1960년대~1980년대까지의 페미니즘, SF 평론을 모아놓은 책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SF 평론서이기에 관련된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저작이다. 특히 이 책은 페미니스트이자 퀴어 활동가였던 저자의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관점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할란 엘리슨의 명작 단편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년과 개'는 저자로부터 통절한 비판을 당한다. 지하세계에서 탈출한 소년이 자신의 개와 함께 단순히 떠나는 소설판의 결말이 영화판에서는 여자친구를 개의 먹이로 주는 장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할란 엘리슨만이 비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국내에서 듀나가 지적했듯이 어슐러 르 귄의 미적지근한 페미니즘 소설가로서의 면모도 비평 대상이 된다. 그녀의 소설이 공동체적 아나키즘에 봉사하고 있을 뿐 페미니즘 소설로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제자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예일대학교 드라마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처럼 백그라운드가 탄탄한 저자가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좋은 것은 남자가 차지하는" 시대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지금도 이 말이 유효하다고 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페미니스트로서 저작 활동에 나선 작가는 활발한 비평활동을 전개하면서 '여자남성'과 같은 젠더 관념에 도전하는 창작물을 다수 펴냈다.




사실 지금도 대부분의 SF 소설,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인 경우가 많다. 여자는 등장인물로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 그녀만의 버릇을 가지지 못한다. 저자는 많은 SF 소설, 사실상 거의 모든 SF 소설에서 여자는 악녀이거나 충실한 아내 역할로만 등장할 뿐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1960년대에는 여성 유토피아 소설이 다수 창작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남성에 의해 쓰인 여성 혐오적인 소설이 많이 출간되기도 하던 시대였다. 남성들은 아마존 여전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세상을 지배한 여자들에 대항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여성 혐오적 소설 속 세계에서 여자들은 남성의 사랑과 성에 의해 굴복당하고 만다. 저자는 어째서 남성들은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그들만의 유토피아 소설을 쓰지 못하는지 묻는다. 이러한 기조에 반대한 여성들의 소설에는 남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만의 유토피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단순히 페미니즘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러브 크래프트와 같은 공포 소설가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고백하는 비평도 있다. 이 챕터에서 저자는 공포 소설이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1950~60년대에 많이 창작된 대중 소설 장르인 모던 고딕에 대한 비평도 볼만한 부분이다. '모던 고딕'은 고풍스러운 저택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여자가 강력한 남성인 '슈퍼 메일'에게 이끌리면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장르다. 요즘으로 치면 트와일라잇과 같은 영어덜트 소설이 모던 고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모던 고딕 소설 5편을 상세하게 해부하면서 그 특징과 여성 혐오적 성질을 통찰하는 부분은 여러번 곱씹을 가치가 있다.




SF 소설가인 듀나는 이 책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애나 러스의 글들은 어처구니 없는 관습과 편견에 맞선 20세기 장르 문학사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유효한 현재형의 질문이자 선언이다"




듀나가 지적했듯이 저자의 문제의식은 2020년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시대현상으로 떠오른 지금 조애나 러스의 글은 더욱 더 큰 울림을 독자들에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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