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미니시리즈] 극한 퇴근 ⑭ - 경의중앙선 타지 마세요

​퇴근시간 압구정역은 강남에서 일산, 혹은 강북으로 가려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만큼 배차도 짧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차들이 모두 대화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구파발행이 교묘하게 섞여있는 상태였다. 9호선의 급행열차와 일반열차의 비율이 체감상 1:1이라고 친다면 대화행과 구파발행은 2:1 정도였다. 그래도 경의중앙선이 되기 전의 경의선보다는 사정이 좋다. 경의중앙선은 서울역행과 공덕행으로 나뉘었는데 공덕행 열차 세 개가 올 때 서울역행 열차 한 개가 겨우 왔으니 말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지하철을 자가용처럼 타는 사람이 체감상 느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만큼 구파발행은 피해서 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내가 압구정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대화행이 아니라 구파발행 열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그 다음 열차인 대화행을 타고 정발산역에 가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싶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압구정역은 사람이 매우 많고 나는 하루종일 회사 일에 치여 있었기 때문에 다음 차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 다음 역인 옥수에서 내려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집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금 있어 보이게 말하면 민트색, 친근하게 말하면 옥색 노선인 경의중앙선은 ‘경의선’과 ‘중앙선’이 합쳐져셔 만들어졌다. 경의선은 경기도 북부와 서울 북쪽을 이어주고 있으며 중앙선은 서울의 중간 부분과 경기도 남쪽을 이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의중앙선은 어찌보면 경기도 남북 대통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게다가 거치는 역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잘만 한다면 다른 지하철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일산에서 홍대입구를 가는데 한 시간도 안걸린다는 사실을 옛날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경의중앙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짧지 않은 시간만에 3호선과 광역버스에 의지하고 있던 일산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의중앙선’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살인적으로 긴 배차시간이다. 경의선일 시절에는 한 시간에 4대가 왔는데 그 중에서 세 개는 종점인 공덕까지 가며 한 개는 아예 다른 노선인 서울역으로 간다. 그렇기 때문에 차 하나를 놓치면 무기력하게 앉아서 게을렀던 지난 날의 내 자신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배차가 조금은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경의중앙선은 다른 열차들에 비해 배차가 현저하게 길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중에 ‘슈뢰딩거의 경기도민’ 이라는 글이 있다. 경기도민이 약속장소에 갈 때 일찍 나가면 이상하게 지각을 하고 늦게 나가면 반대로 빨리 도착한다는 말이다. 이는 경기도민이 서울을 갈 때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말 되겠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일산사람을 ‘슈뢰딩거의 경기도민’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경의중앙선’이다. 제아무리 일찍 나가도 타야할 기차를 놓치면 그 날 약속장소에 지각을 하는 것이고 늦게 나가서 허겁지겁 역에 도착했는데 운좋게 기차가 오면 그걸 타고 일찍 가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옥수역에 도착한 나는 이제 내 스스로를 걸고 시험을 해야했다. 과연 이번에는 한강다리를 건너지 않고 집에 일찍 도착할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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