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비틀리스, 22세기의 사랑

비틀리스는 인간형 안드로이드 hIE가 실용화된 22세기 일본을 무대로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아라토는 어느날 우연히 인류미답산물이라고 불리는 초고성능 hIE의 주인이 된다. 아라토가 소유하게 된 hIE 레이시아는 특수전 부대를 능가하는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초고도 AI라고 불리는 지성을 발달시키게 된다. 레이시아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초고도 AI 히긴스를 정지시킴으로써 세상에 초고도 AI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환기하려고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레이시아는 자신과 동일한 라인업의 기체들인 '자매들'을 한기씩 파괴하게 된다.




장장 1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소설은 '라이트 노벨'의 전형적인 구도인 Boy meet Girl로 시작의 포문을 연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결코 라이트하지 않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세계에서 일본은 해저드라고 불리는 초고도 AI 사고를 겪은 바 있다. 초고도 AI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여 인류미답산물, 인간의 기술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가리킨다. 때문에 초고도 AI는 네트워크로부터 격리되어 독립적인 작동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는 hIE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다시피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동네의 흔한 음식점도 hIE를 점원으로 쓰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이런 시대에 주인공 아라토는 인간의 '의미'가 깃들어지지 않은 hIE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hIE를 의미가 없는 '형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세상의 정보는 인간의 핵심 - 영혼을 중심으로 한 도넛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hIE는 마음이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기계를 사랑하게 된 인간의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소설은 미래에 인간을 초월한 안드로이드가 등장한다면 이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은 폭력이나 지배만이 아니라 사랑의 형태를 띨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현재도 산업현장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 로봇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것에는 거리가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 지적 능력을 갖춘 로봇은 그야말로 '공상과학' 속의 이야기다. 저자는 21세기에 냉동인간이 되어 22세기에 깨어나게 된 버로스라는 여자 인물을 통해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만약 소설 내용대로 hIE가 실용화된다면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라는 최근의 AI의 노동 전유 문제처럼 다양한 방식의 사고 실험이 가능하다. 이 점에 있어 이 소설의 장점이 존재한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변화시켜왔다. 소설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 사고 실험에서 인간은 정치인을 hIE로 만들어낸다는 아이디어에까지 이른다. 즉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지배의 새로운 버젼인 셈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hIE를 파괴하기 위해 항체 네트워크라는 반기술 단체가 등장하기도 한다.




러다이트를 연상시키는 항체 네트워크는 인간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고 hIE만 파괴한다는 활동 신조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hIE에 의해 조종되며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기술 발전에 의해서 위협받기 마련인 것이다. 비틀리스의 세계를 디스토피아로 볼지 유토피아로 볼지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의견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한 라이트 노벨이 아닌 것은 이 소설이 구현하고 있는 hIE의 미래상이 자못 치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이시아는 hIE로서 의류 모델이 되어 도시를 누비며 실시간으로 광고를 송출한다. 이런 과정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하나에 현실감이 넘친다. 단순히 메이드 로봇이 가정에 들어왔다는 일본 서브컬쳐의 클리셰를 넘어 미래 사회상을 그려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때문에 이 소설을 단순한 오락물만으로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미래상은 곧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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