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벌써 아홉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힙합 역사는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래퍼들이 쇼미더머니를 통해 스타가 되었고 많은 1세대 래퍼들이 쇼미더머니의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쇼미더머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수많은 래퍼들이 실력에 상관없이 동일선상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앨범을 냈든 내지 않았든 언더그라운드에서 알려졌든 완전히 무명이든 비트도 없이 프로듀서 앞에서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랩을 해야 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쇼미더머니를 인맥 힙합이라면서 그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만 적어도 예선에 있어서의 공정성은 충분히 담보된다고 봐야 한다.
이 점이 쇼미더머니가 본선에 들어간 이후에는 재미가 떨어지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미 어느 정도 높이 올라갈 래퍼는 예선에서부터 다른 래퍼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들은 클로즈업을 받기도 하고, 회차와 회차 사이를 이어주는 브릿지로 부각되기도 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미 검증된 신예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방영되는 특혜는 무명의 이름으로 방송에 비춰지지도 않은 채 사라지는 수많은 래퍼들에게는 화가 날만도 한 부분이다.
쇼미더머니는 사실 예선을 제외하면 그 후로는 쇼프로그램일뿐 더이상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하기 힘든 방송이다. 예선에서 몇몇 래퍼는 우승 후보로 지목되고 실제로 결과도 그와 비슷하게 나온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 1세대 래퍼가 갑자기 실력을 발휘해서 우승을 거머쥐는 대 역전극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프로듀서들이 랩이라는 장르를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어랩을 중요시하고 영어랩을 하면 뭔가 실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가정하는 부분부터 그렇다. 욕이 많이 들어간다거나 자신만의 특이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출연자도 예선에서 걸러진다. 전시즌에서 랩인지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음악을 선보인 유자가 악플 세례를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청자들도 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래퍼'에서 벗어난 유형을 원하는 건 아니다. 프로듀서들은 충분히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또는 그래야만 하는 당위의 차원에서 심사를 한다.
물론 이런 심사에서도 이레귤러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전시즌에서 인맥 힙합의 희생자로 비춰졌다가 최근 LCK 로고송으로 유명해진 '머쉬베놈'이나 스턴건에 맞아 장렬한 기절을 선보인 '정상수'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만의 특이한 랩으로 혹은 톤으로, 플로우로 좌중을 압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프로그램에서 잠시 잠깐의 재밋거리로 소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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