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스페이스 오페라, 지구의 운명을 건 음악 콘테스트


'스페이스 오페라'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 노래 컨테스트에 나간 한물간 록스타의 이야기를 담은 코믹 SF다. 이 책은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더글라스 아담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적자를 자임하고 있다. 초반부터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채로운 묘사로 시작한 소설은 전 우주가 '지각력 전쟁'이라는 다툼을 이겨내고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를 열게 된 연유에 대해 설명한다.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에 영국인 로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부분에서부터 더글라스 아담스의 색채를 띠고 있는 이 작품은 실재하는 콘테스트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모델로 하고 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2차대전이 끝난 후 분열된 유럽에 일체감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행사다. 누가 고기이고 누가 인간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다투던 우주의 여러 종족들은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서 꼴찌를 하는 종족을 지각력이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로 합의한다.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서 꼴찌가 된 종족은 말 그대로 말살된다. 갑작스럽게 전 지구에 등장한 외계인이 지구인 하나하나에게 현현하여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위대한 가수들을 한무더기 놔두고 한물간 로커인 데시벨 존스의 밴드인 앱솔루트 제로스가 지구 대표로 뽑힌다. 온갖 괴이한 종족으로 이뤄진 이 콘테스트에서 과연 지구인 대표는 온전히 육체와 정신을 유지한 상태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소설의 관건이 된다.



우선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소설이 SF 계에서 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 코믹 SF의 계보를 따른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테리 프래쳇의 디스크 월드 시리즈 같은 작품보다 이 소설은 더욱 튀고 아방가르드한 묘사를 거듭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 끝에 나온 결과물은 번역하기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 문장들과 묘사이다. 주어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의 문장이 이 소설에는 범람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이 노리고 있는 유머는 미국식 유머가 아니라 영국식 유머다. 영국식 유머는 자국민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유머 감각으로 유명하다. 미국인 작가가 시도한 영국식 유머이다 보니까 더욱 독특한 유머감각이 소설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 또한 번역작품으로는 제대로 온전한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은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를 밀고 나가며 주인공은 헛된 패배자에서 멸망하지 않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남기 때문이다. 일단 손에 잡고 나면 전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족에 대한 묘사, 지금까지 이뤄졌던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 대한 설명만 한무더기다. 이 부분을 읽어내려가는 것에만 몇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것은 오롯이 저자와 번역자의 역량에 달린 문제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그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의 기원이 되는 SF의 하위 장르를 근사하게 비틀면서도 코믹 SF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저자는 단순한 트윗 한마디에서 기원한 이 소설을 복잡하고 현학적인 묘사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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