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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공터에서" 막막한 세상서 몸 비빌 여유란?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마씨 집안의 2대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6.25에서 월남전, 고도 경제 성장시기로 이어지는 서사는 각 인물들의 고통을 뿌리까지 파헤친다. 주인공인 마차세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터에 아버지의 부음에 맞닥뜨린다. 저자의 시선은 마차세의 아버지인 마동수의 청년기로 이어진다. 마동수는 일제시대에 상해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다가 성적이 나빠 학교에서 쫓겨난다. 대신 만나게 된 하춘파는 독립운동조직의 말단에 마동수를 끌어들인다.




6.25 시절 핏물에 절은 미군 군복을 빨다가 마차세의 어머니 이도순을 만난 마동수는 첫째 마장세와 둘째 마차세를 피난민촌에서 낳는다. 이들의 출생은 남녀의 만남이 아니라 마치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차세는 대학시절 동기인 박상희와 결혼하고 마장세는 월남전에 참전해 제대한 뒤 미국 문관을 따라가 괌에 자리를 잡는다. 박정희가 암살당하고 시절이 수상해지자 언론사에서 일하던 마차세는 타의에 의해 퇴직한다.




마장세는 괌 주변의 섬에서 한국 중고 자동차를 팔고 고철이 된 자동차를 다시 수입해서 파는 무역업을 한다. 그 와중에 마약에도 손을 대게 된 마장세는 한국이 두렵다. 미군과 양공주의 혼혈 여자와 결혼한 마장세는 월남전 당시 무공훈장을 받았다. 정글에서 전우를 구하고 새로운 공격로를 개척했다는 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상을 입은 전우를 사살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괌에서 살며 아버지의 죽음에도, 어머니의 죽음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차세는 마장세의 권유에 의해 그의 고교시절 친구인 오장춘의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오장춘은 군대 시절부터 자동차 연료를 빼돌려 돈을 벌고 마차세가 휴가 나갈 때 여비를 챙겨주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는 고물 회사를 운영하며 마장세와 이익이 부합해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로 한다. 고철이 된 자동차를 오장춘의 회사가 수입해 팔기 시작한다. 마차세는 마장세와 괌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서로의 거리를 다시금 확인한다.




마장세는 괌 주변의 섬 바다에 자동차를 밀어넣다 지방 정부에 단속되어 국제범죄자 신세가 된다. 또 마약 거래를 했던 것이 꼬리가 잡혀 사업 파트너인 오장춘도 덩달아 경찰의 수사망에 걸린다. 결국 마장세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오장춘은 군대 시절 근무했던 동부전선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마차세는 다시 일자리를 잃고 예전에 했던 오토바이 배달 일로 돌아간다.




김훈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자신이 듣고 경험한 일의 파편들이 남아 있어서라고 말한다. 자신의 인물들은 항상 영웅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존재라는 말을 덧붙인다. 성웅이라고 불린 이순신을 다룬 '칼의 노래'로 이름을 얻은 그의 '작가의 말' 치고는 좀 어색해 보인다. 이순신이 결단이 아니라 갈등하는 이순신이었던 것처럼 '공터에서'의 인물들도 항상 고통에 시달린다.




일제 시대 중국을 떠돌며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마동수가 집에 붙어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나 이도순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치매 상태에서도 고통받는 것이 그 예이다. 마차세나 마장세 형제의 삶도 기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저마다 한국이란 나라가 제공해준 나름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김훈답게 이 소설은 '국제시장'의 소설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의 현대사를 가족의 일화로 가공하는 모습이 비슷하고 그 간난의 순간들을 애절하게 묘사하는 것도 유사하다. 김훈의 문장은 유장하지만 끊고 맺음이 분명하다. 김훈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읽어볼 소설이지만 두번 읽을 이유까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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