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적인 인종차별의 결말

스태프 차의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LA 폭동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던 총격 사건인 '두순자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두순자 사건은 물건을 사려고 했던 흑인 청소년을 강도로 오인해 한인 두순자씨가 총으로 사망케 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과 함께 흑인 커뮤니티를 자극해서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폭동이 일어나는 빌미를 주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한정자 사건'으로 대체된 흑인 청소년 사살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이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겪게 되는 일을 그리고 있다. 저자인 스태프 차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떄문에 김치나 김밥 같은 한국적인 소재를 이야기 속에 적절히 배치해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인종차별의 폐해가 적은 한국에 사는 독자 입장에서는 가해자로서의 한국인을 그리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일상적으로 차별 받는 상황 속에서 한국인이 가해자로서 대두될 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인터넷에서는 당시 사건에 대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저격을 하던 한국인의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다소 영웅시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당시 사건이 가졌던 파급력과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맞닥뜨리지를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어째서 한국인을 먼저 흑인이 공격했냐 하는, '피해자다움'에 대해 다시금 떠들게 될 뿐이다.
하지만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피해자도 순백의 모습으로 피해를 입을 수야 없는 일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에 가야만 했던 한국인들이 어떻게 내면의 인종차별을 총을 통한 살상으로 이어지게 했는가를 이 소설은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흑인보다 더 차별을 받는 인종이 동양인이라고들 한다. 서로 차별을 받는 존재들 속에서도 우열을 가리며 더 피해자다움을 가진 존재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척 우스운 일이다. 한국이었다면 단순한 폭력 사건으로 마무리되었을 사건이 미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만나 총기를 이용한 살상 사건으로 비화됐다. 여기서 시작한 저자의 상상력은 만약 수십년 후 그 '두순자'=한정자씨가 흑인으로부터 보복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적 전유는 작가가 글을 잘 쓴다면 해결될 거라는 다소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책에서 서술의 무게가 한국인에게 더 묵직하게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흑인의 관점에서 두순자 사건을 다루려고 했던 저자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이 읽는 한국사람의 가해서사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훌륭한 글솜씨 덕분이다. 만약 저자가 흑인이었다면 이 소설은 이 소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