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크라카티트,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

크라카티트는 '로봇'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체코의 소설가 카렐 차펙의 SF 소설이다. SF 소설을 선구적으로 쓴 인물 답게 원자폭탄을 연상시키는 '크라카티트'라는 물질을 개발해낸 과학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크라카티트를 개발해내고 여러 국가와 정보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떤 소왕국의 성에 갇히게 된 주인공은 성에 사는 공주의 사랑을 받는다. 사랑에 못이겨 세상을 파괴할 운명이 주어진 크라카티트를 악당들의 손에 넘길 뻔하기도 하는 주인공은 성을 탈출해 리얼리즘의 세계가 아닌 곳을 떠돌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옛날 - 192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 낡은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특히 번역된 문체가 거의 의고체 수준이고 원문의 문장 역시 중언부언하는 경향이 있다. 초반 부분에서 크라카티트를 개발하고 혼란에 빠진 과학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는 혹시 신파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등장인물들은 뻣뻣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과장된 감정을 표출한다.




주인공인 과학자는 작품에서 3번이나 사랑에 빠지는데 거의 보는 여자마다 반하는 수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진실되고 에로틱한 사랑은 공주와의 사랑이지만 갑작스럽게 공주와 헤어진 후에 잠깐 만났던 베일을 쓴 여자를 찾아 헤매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준다. 카렐 차펙의 다른 작품인 '도롱뇽과의 전쟁'에서는 세련된 기법으로 미래 세계를 묘사하는 필력을 보여주었기에 이 작품에서 보이는 혼란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생명력을 갖는 것은 원자폭탄이 개발되기 이전에 이미 원자 폭탄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는 카렐 차펙의 선구성에 있다. 물론 고주파를 통해 물질이 폭발한다는 등 세부적인 기술적 사항에 있어서는 여전히 약한 면모를 보이는 저자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과학적 엄밀성을 따지기보다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술인 원자 폭탄이 개발되었을 때 세상에 어떤 혼란이 발생하는가를 외삽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점이 당대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며 카렐 차펙을 불멸의 작가로 만든 요인이다.




크라카티트에서 가장 오랫동안 묘사되고 있는 장면은 공주와 과학자 간의 밀당이다. 이들은 신분을 뛰어넘어 또 적과 아군이라는 처지를 초월해서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둘의 사랑에 대한 묘사는 카렐 차펙의 다른 작품들을 통털어서도 보기가 힘든 에로틱한 묘사로 일관하고 있다. SF 소설이라기보다는 카렐 차펙식의 로맨스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한 분량을 둘의 사랑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크라카티트를 얻기 위해 카슨이란 인물이 가명을 써가며 계속해서 등장하는 장면은 자못 추리소설의 그것을 연상케하는 측면도 있다. 카슨이란 동일한 가명을 쓴 두 명의 인물이 대치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원자폭탄에 대해 후대의 사람들이 기울인 집착과 노력을 떠올려보면 예언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지금 현대의 독자의 관점에서 이 작품을 재단한다는 것은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역사와 시간의 더께가 이 작품과 독자의 사이에 끼여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초월한 작품은 없듯이 카렐 차펙도 자신들의 시간에서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책 자체로서만 봤을 때 안타까운 것은 교정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있다. 곳곳에 오타와 비문이 가득하다. 독자 북 펀드로 만들어진 책이며 체코 정부의 조력으로 번역된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이 마중물이 되어 더 많은 카렐 차펙의 대표작을 한국에서도 읽어보게 될 날이 왔으면 한다. 카렐 차펙은 체코의 유명 작가라는 수준을 넘어 전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수준의 걸작들을 남긴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SF 소설과 기타 작품을 보는 것은 한국 SF 소설계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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