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FPS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제작사인 크래프톤은 본래 블루홀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창업자 장병규 의장은 3년 내에 300억원을 써서 세계에 내놓을만한 MMORPG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를 도와주는 인력은 엔씨소프트에서 대거 끌어다 썼다. 원대한 목표에 걸맞는 투자도 받았다.
이들이 시장에 내놓은 게임은 테라. 그러나 이 게임은 들인 돈에 비해 매출액이 보잘 것 없었다. 글로벌 시장에도 뛰어들어 봤지만 테라의 성적은 높아지질 않았다. 장병규 의장은 최고의 MMORPG 명가를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최고의 게임 명가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방향 전환을 한다.
시대는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전파되어 모바일 게임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장병규 의장은 여러 모바일 게임사들을 지분 교환 형식으로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었다. 위대한 하나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 단기적이지만 가능성이 분산된 다양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이 블루홀 스튜디오의 사명이 되었다.
점점 회사는 힘들어지고 투자를 받은 돈도 바닥을 드러냈다. 최고의 인재를 끌어왔기에 그만큼 운영비가 많이 소요됐다. 장병규 의장은 사재 300억원을 담보로 돈을 빌려 회사 운영비를 댔다. 테라를 통해 얻는 수익은 모두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는 데 투입됐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한 모바일 게임사의 대표였던 김창한이다. 김창한은 세계 시장에서 배틀로열이라는 새로운 게임 장르가 생성되고 있다는 걸 캐치했다. 이 장르를 처음 시작한 사람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여 만들어진 게임이 바로 배틀그라운드다.
10년이라는 세월이 보상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배틀그라운드는 단지 블루홀 스튜디오가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던 수많은 게임 중 하나였다. 제작비 비중으로 봐도 배틀그라운드에 들인 비용은 테라의 5분의 1도 안됐다. 그럼에도 최근 상장한 크래프톤을 만들어낸 위대한 성공으로 남았다.
이 책은 크래프톤의 실패기를 담은 책이다. 장병규 의장이 창업을 하고 나서 자신의 사재를 전부 담보로 잡아 돈을 빌리고도, 회사가 넘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에야 비로소 성공이란 단맛이 내려졌다. 이 성공이 과연 그 혼자 이룬 것인가. 아니다. 수많은 개발자들과 아트 스탭들의 노고가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압박도 심했다. 초기에 개발자들을 대거 끌어들인 엔씨소프트에서 자신들의 게임 컨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이 소송에 들인 비용과 시간도 엄청났다.
크래프톤이란 회사는 다른 모든 회사가 다 그렇겠지만 꿈을 먹고 사는 흥행 산업이다. 때문에 마지막 뒤집기가 가능했다. 문제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썼던 비용과 인력이 대부분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것에 있다. 크래프톤의 실패기, 아니 성공기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필자의 답은 부정적이다. 사업의 성공에는 항상 운이 따르기 마련이고, 성공한 사람에게는 그만의 특수한 환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나 회사가 섣불리 흉내내기에는 어려운 여건이 너무도 많다. 때문에 이 책은 창업을 꿈꾸고 있거나 현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만한 경영서다. 어떻게 회사의 비전을 정할 것인지, 또 운영 방향을 비틀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인사이트가 넘쳐난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어떻게 해서 한 기업이 성공했느냐보다는 어떻게 한 기업이 시련을 견뎌내느냐를 더 많이 읽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것처럼, 기업의 굴곡도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이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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