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김훈

[미니시리즈] 극한 퇴근 ⑫ - 그래서 여기가 지금 어딘데?


앞서 말했듯 시내버스로 강북을 가게되면 압구정에서 한강을 건너야 한다. 그리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길은 매우 막히기 때문에 그닥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압구정에서 금호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막힐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덕분에 신논현역에서 버스를 탄 것도 아니었는데 꽉 막힌 도로에서 내 인내심을 시험해야 했다. 게다가 마을버스기 때문에 사람도 많았는데, 내가 퇴근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을 당시는 6월이기 때문에 내 인내심은 더더욱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내 버스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광화문에만 도착하면 어떻게든 앉아서 편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청구역에서 내린 다음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에 가야했다. 하지만 사람이 꽉 차 있는 버스에서 안내방송을 제대로 들을 리 없었고 덕분에 나는 생판 모르는 장소에서 내려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그 당시 내가 어디에 내렸는지 모르고 있다. 청구역 전후에 위치한 역에 내렸기 때문에 그 근처일 것이다.


어쨌든 서울 지리라고는 대학교와 전 회사 주변밖에 모르는 나는 그렇게 생판 모르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 시간이 약 일곱시였는데 신논현역에서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일단 ‘모르는 서울’보다는 집에 가까울 것이 분명했다.


내가 지금 있는 장소 자체가 어딘지 몰랐기 때문에 다른 것을 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덕분에 모르는 정류장에 멍하게 앉아서 똑 같은 버스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버스는 바로 왔지만, 청구역에서 5호선을 타고 광화문을 도착하자 이미 일곱시 반이 넘어 있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있는데, 광화문에서 타는 시내버스는 대부분 서울역을 종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꼭 서울역이 종점이 아니더라도 일단 어디서든 돌아가게 되어있다. 일명 ‘빨강 버스’라고 불리는 버스들은 막히지 않는 대신 살짝 돌아가는 감이 없지않아 있다. 게다가 다른 버스라면 건너편에서 타면 되겠지만 종점에서 돌아가는 버스기 때문에 일정 지점을 지나지 않으면 건너편에서 탈 수가 없다. 광화문역의 건너편 버스를 굳이 타고 싶다면 서대문경찰서까지 가야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덕분에 그 날 집에 도착하니 여덟시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 참고로 내가 취직을 하면서 생긴 신조가 있다. 매주 듣는 라디오가 여덟시 반에 시작하는데 적어도 그 시간보단 일찍 들어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거의 비슷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이전 회사에서도 항상 여덟시 반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갖은 애를 쓰곤 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회사에 다닌지 거의 3주가 되는 시점에 말이다.



조회수 1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